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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엄주동 선생.장헌문 의병장 추모비 제막식 개최

애국지사 엄주동 선생·장헌문 의병장 추모비 제막식

“우리 고장이 낳은 지사의 숭고한 얼을 추모하고, 후세 교육의 본보기로 삼기위해 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제98주년을 맞는 3.1절에 포항 장기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장기출신 애국지사 엄주동 선생과 장헌문 의병장의 추모비 제막식이 열려 3.1절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강덕 포항시장과 종친회 및 장기면민 등 150명이 참석했으며, 추모비 건립 경과보고, 제막, 비문봉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축사를 통해 “애국지사 추모비 건립과 제막에 이르기 까지 장기발전연구회를 비롯한 면민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추모비를 통해 애국정신을 되새기고 후대에까지 길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당부했다.

엄주동 선생과 장헌문 의병장은 장기면 임중리와 죽정리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은 애국지사로, 그 업적과 뜻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 장기발전연구회가 주관해서 추모비를 제작했다.

엄주동 선생 추모비는 포항시 보조금 1천만원과 자체부담 1천만원 총 2천만원의 사업비로 2016년 9월 착공하여 3개월의 공사 끝에 지난 11월 건립됐다. 장헌문 의병장의 추모비 또한 지난 2011년 8월 건립됐으나 지금껏 제막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이번에 함께 제막식을 진행했다.

애국지사 엄주동 선생은 1897년 당시 영일군 장기면 임중리에서 태어나 보성중학교와 경성고보 교원양성소를 다녔다. 1915년 이우용, 최규익 등과 함께 일본인들에게 피탈당하고 있는 각종 산업을 한국인들이 부흥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와 국권회복 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조선산직장려계를 조직해 서기로 활동했다.

학생들에게 한국혼을 심어주는 정신적 교육으로 국권회복을 기약하고, 일제의 경제적인 침탈을 벗어나기 위한 각종 사업을 계획하던 중 1917년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광복까지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애국지사 장헌문 의병장은 1870년 장기면 죽정리에서 태어나 을미의병이 일어나자 의병에 참가했으며, 을사의병이 일어나자 이듬해 5월 김재홍, 김복선 등과 거의를 결의하고 3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의병장으로 추대됐다. 영일을 중심으로 경주, 죽장, 흥해, 청하 등지에서 항전하였으며, 정환직(鄭煥直)과 신돌석(申乭石) 의진과 더불어 호각의 세를 이루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09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0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8 년 12월에 출옥한 후 1926년 1월 25일 옥고의 여독으로 56세에 사망했다. 추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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