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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종북세력은 국군의 적 발표

제목 : 국방부, 종북세력=국군의 적' 공식 규정 그리고 문재인의 문제

 

국방부가 10월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실에 제출한 종북실체 표준 교안에 따르면 군 당국은 종북세력을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을 맹종하는 이적세력으로 분명한 우리 국군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종북실체 표준교안 전군 하달..장병 정신교육에 활용 지시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국방부가 종북세력은 국군의 적'이라고 규정하는 내용의 종북실체 표준 교안을 전 군에 하달했다

 

국방부가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실에 제출한 사상전의 승리자가 되자!'라는 제목의 종북실체 표준 교안에 따르면 군 당국은 종북세력을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대남전략 노선을 맹종하는 이적세력으로 분명한 우리 국군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국방부가 공식적인 종북교재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표준 교안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았다

 

표준 교안은 "종북세력은 대한민국의 역사 부정을 통해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용어혼란 전술과 사회 혼란을 통해 공권력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실체를 감춘 채 배후에서 시위의 기획과 선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표준 교안은 종북세력의 위험성을 악성바이러스에 비유하며 "폭력 시위현장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보여도 배후에서 이를 기획하고 조종하는 세력의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 내부에서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을 조성하는 종북세력을 악성바이러스에 비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종북세력을 적으로 규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종북세력의 활동 목표가 북한의 대남전략 목표인 한반도 적화'이고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이를 통한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북한의 노선을 그대로 추종하며 ▲북한에 밀입북해 직접 지령을 받거나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에게 포섭돼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이적행위를 하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표준 교안은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 9개 단체를 이적 단체로 꼽았다

 

또 장병들의 사이버 종북카페 가입 등 군내 종북세력이 침투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종북세력이 군에 침투하면 군사기밀 유출, 장병 전투의지 약화, 대적관 희석화, 군사반란 배후 조종 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이날 총 18페이지인 종북실체 표준 교안을 전부대에 하달하면서 신병훈련소와 야전부대, 학교기관 등에서 장병 정신교육을 할 때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 군이 종북실체 인식 교육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각급 부대의 교육준비 부담을 해소하며 (논란의 소지가 있는) 교재의 임의 제작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표준 교안 제작 이유를 설명했다

 

진 의원은 "종북세력과 진보세력은 구별돼야 한다"며 "일선 부대에서 교육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

 

동아일보 홍찬식칼럼]문재인과 ‘흥남 철수의 영웅’ 현봉학

기사입력 2012-10-10 수석논설위원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양친은 함경남도의 항구도시인 흥남에서 대대로 살아오다가 6·25전쟁 중인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했다.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그의 부친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안 했다고 한다. 남한으로 내려온 그의 부모는 거제도에서 피란 생활을 시작했다.

 

진영논리에 恩人 고마움 외면

 

흥남 철수는 6·25에 참전한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했다가 중공군 개입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미군과 국군 병력 10만 명을 후퇴시킨 작전이다. 당초 미군은 북한 피란민들을 수송할 계획이 없었다. 영하 20도의 혹한에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중공군의 공세 속에서 10만 병력을 옮기는 일만도 버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전을 지휘한 미군 10군단 사령관 에드워드 알먼드의 옆에는 한국인 통역 현봉학(1922∼2007)이 있었다.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28세의 젊은 의사였다

 

그는 알먼드 사령관에게 북한 주민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알먼드는 현봉학의 간곡한 제의를 받아들였다. 일본과 부산에 수소문해 11척의 배를 불러왔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마지막으로 흥남 부두를 출발한 배는 미국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2000명 이상은 탈 수 없다던 이 배에는 1만4000명의 피란민이 가득 탑승했다. 미군은 군수물자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피란민을 태웠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훗날 ‘기적의 배’로 불렸다. 이렇게 남한으로 내려간 북한 피란민은 9만8000명에 달했고 그 안에는 문 후보의 부모도 들어 있었다.

 

문 후보는 1952년 피란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미군의 흥남 철수라는 역사적 사건, 현봉학과 알먼드 같은 인물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의 존재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문 후보 자신의 가족사에 대한 기억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문 후보가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 ‘운명’에는 6·25 때 피란민들을 잘 대해준 거제도 주민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은 여러 번 나오지만 부모를 구해준 미군에 감사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작 피란민들은 미군이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몰랐다’며 은근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외가 쪽 친척들이 아무도 남한으로 내려오지 못했는데 미군이 흥남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막아 그렇게 됐다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합 말하면서 ‘편 가르기’ 행보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의 실세로 있었던 2005년 5월에 거제도 피란민들은 자신들이 처음 정착했던 곳에 ‘흥남 철수 작전 기념비’를 세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기념비에는 ‘흥남 철수는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인도주의적인 작전이었다’고 적혀 있다. 현봉학 알먼드 등의 이름과 업적도 기념비에 새겨졌다.

 

문 후보가 다른 피란민들과 달리 까칠한 기억을 드러내는 속내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그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상한 이후 행보를 보면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문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에는 가지 않았다. 나중에 “권위주의 시절의 정치세력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한다면 참배하겠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기준이 모호한 데다 단기간에 충족되기는 힘든 조건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지난해 10월 “세상에 무슨 이런 조약이 다 있나”라며 한미 FTA 협상단을 향해 “친미를 넘어 숭미, 종미라고 할 정도”라고 성토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친미와 반미를 명확히 구분해온 야권의 진영논리와 ‘편 가르기’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2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참여정부에서 다하지 못한 과거사 정리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 정부의 집권 5년 동안 8000건의 과거사를 정리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편저편으로 갈라놓았던 일을 다시 벌이겠다는 얘기다.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직후 “참여정부 때 한미 FTA의 선결조건으로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문제 때문에 영화계와 갈등을 초래했다”면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영화인들이 무척 난처했을 것”이라며 사과한 것에서도 ‘반미 코드’와 함께 영화계의 진보 세력을 향한 손짓이 느껴진다. 그는 지난주 “진보 보수의 편 가르기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을 이루겠다”고 말했으나 실제 행동과 큰 거리가 있다. 만약 당선될 경우 ‘반쪽 대통령’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문 후보는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5·16과 유신에 대한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국민은 문 후보의 6·25 등 현대사 인식과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끝 -

 

[조선일보 홍준호 칼럼] 문재인 후보에 '있는 것'과 '없는 것

2012.10.09 22:37

 

가난에 좌절 않고 일어선 인물… 소외계층에 관심과 애정 깊어

자기 편 대동단결엔 성공했으나 '네 편'까지 보듬는 자세 안 보여

'노무현의 무엇'을 뛰어넘어서 자신이 무엇을 이룰까 밝혀야

 

한동안 박근혜·안철수 후보에게 가려 있던 문재인 후보가 오름세를 보인다고 해서 그의 삶과 생각들을 들여다봤다. 그는 많은 장점과 덕목을 갖춘 사람이었다. 6·25전쟁 중 경남 거제 피란민촌에서 태어난 문 후보는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겪은 고단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 연탄 배달을 도와야 했던 그에게 가난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으나 그는 다른 많은 건실한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을 통해 자립심을 길렀다고 했다. 공부도 잘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차석(次席)으로 졸업한 모범생이면서도 유신 반대 시위에 앞장서 구속되고 제적됐다가 복학하기도 했다. 1980년대 노무현 전(前) 대통령과 짝을 이뤄 변호사를 할 땐 부산·울산·창원의 노동자 관련 사건을 도맡다시피 할 정도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었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그의 가슴엔 커다란 불덩이가 들어차 있을 법한데 그는 웬만해선 불같이 화내는 일이 없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를 떠날 때를 회고하며 "우리는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부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진보 진영으로부터도…"라고 자책했다. 그랬던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민주당에서조차 '실패한 친노(親盧)로는 야당의 미래가 없다'는 수군거림이 일었다. 친노는 집권 시절 국민은 물론 여당까지 두 동강 낸 분열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문 후보가 '친노 필패론(必敗論)'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건 당내에서 나름대로 분열의 정치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옛 민주당과 친노를 합쳐 민주통합당을 만들고 그 민주통합당이 총선에서 진보당과 손잡도록 뛰었고 지금은 안철수 후보 측과 공동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진보로부터도 거센 공격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줄곧 "'무엇'을 하는가보다 그걸 '어떻게' 이루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어떻게'에 대해 '민주 진보 진영이 하나 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내 편'의 대동단결이다. 이에 비해 그가 추구하는 '문재인의 무엇'이 무엇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그의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이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13대 총선에 나설 때 내건 '사람 사는 세상'과 겹친다. 그가 말하는 '혁신' '통합' '분권'은 노 정부의 국정 과제였다. 노 전 대통령 사후(死後)에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 하게 됐다"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문 후보이기에 그에겐 '노무현의 무엇' 말고 '문재인의 무엇'이 따로 있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문 후보가 노무현 정부 때 '내 편'마저 갈라져 일을 그르쳤다고 반성하는 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노 정부가 하고자 한 일은 옳은데 오로지 '내 편'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이라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한 '네 편'까지 설득하고 보듬고 가야 하는 자리란 점에서 문 후보에게서 찾을 수 없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다.

 

문 후보는 저서에서 자기 아버지에 대해 "한일회담 때 이웃 대학생에게 왜 반대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우리나라는 중농(重農)주의적 성장을 해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거꾸로 저(低)곡가로 농촌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알게 모르게 많은 걸 내 안에 남기고 가신 분이다"고 회고했다. 장기 집권을 한 박정희 정권이 비판받을 대목은 많지만 저곡가·저임금을 들어 박 정권의 공업화 정책을 비난하던 사람들처럼 그때 대한민국이 중농주의로 방향을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지금도 있을지 모르겠다.

 

문 후보 멘토 단장인 인재근 의원은 국민을 상대로 '한반도 평화통일에 장애가 되는 나라'를 조사해 엊그제 발표했다. 중국 47.1%, 북한 17.9%, 미국 17.6%, 일본 7.6%였고, '10년 뒤 장애가 될 나라'는 중국 53.2%, 미국 13.5% 순이었다. 10년 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반미(反美)면 어때?'로 바람몰이를 하고 집권 후엔 외교관들조차 한미 동맹파와 자주파로 나누어 한미 동맹파는 국익(國益) 저해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돌리던 시절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 변화다. 그새 국민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었다.

 

평시(平時) 지도자에겐 주어진 목표를 '어떻게' 잘 이뤄내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안팎 환경이 급변하는 전환기의 지도자는 달라진 상황에서 이전과 다른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부터 먼저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문 후보의 노 정부에 대한 진정한 성찰(省察)은 '내 편'만의 단결을 넘어서고 10년 전 '노무현 정책'을 뛰어넘어 10년 후를 내다보는 '문재인 구상'까지 내놓을 때 완성될 것이다

 

자료정리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창원시지회 사무국장

겸, 보훈지킴이 창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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