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학교의 교육과정은 평일반(화요일·목요일)과 주말반(토요일)으로 나뉜다. 수업이 있는 날엔 공방이 다소 북적대지만 수업이 없는 날이라고 해서 고요하지는 않다. 딸의 권유로 이곳에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회원 권태경씨(69)가 그 이유를 귀띔한다.
“여기 회원 대부분이 은퇴를 준비하거나 저처럼 이미 은퇴한 분들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만한 놀이터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취미활동에 몰두할 수 있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오며 가며 편하게 들르기도 하고요. 어떨 땐 공방이 동네 사랑방 같아요. 오늘도 인근에 일 보러 왔다가 고 대표랑 이야기도 하고 음료수도 한잔할 겸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이렇게 회원들이 수시로 공방을 찾다 보니 고 대표는 일주일 내내 자리를 지킨다. 그래도 덕분에 목재 냄새만이 아니라 사람 향기도 실컷 맡는다며 환하게 웃는다.
지금은 영락없는 목수이지만 귀촌하기 전까지 고 대표의 삶은 꽤 굴곡지다. 명문대 철학과 졸업 후 기업컨설팅회사와 무역회사에서 일하다 돌연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다시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또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일이 번역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책만 해도 10권이 넘는데, 최근 예비 귀농·귀촌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마루야마 겐지의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도 그의 번역작이다.
“번역가로 활동하다 한차례 더 회사생활을 했지만 여러모로 회의감을 느껴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제 소질과 성격을 돌아보니 어릴 적부터 공작을 좋아하고 어느 한곳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 목공일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길로 경기도 광주에 있는 목공방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목공을 배운 후 창업을 고려할 때쯤 포항에 살던 매제에게서 연락이 왔다. 쟁쟁한 철강업체가 많아 경기를 타지 않는 포항에서 공방을 열어보라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포항도 경기가 그리 좋지 않지만 제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회사생활할 때는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도, 노력한다고 꼭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선 하고 싶은 일을 원껏 할 수 있고, 노력하고 의도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니까 삶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고 고 대표가 자기 일에만 빠져 마을 일을 등한시하는 귀촌인은 아니다. 오히려 4년째 마을 청년회장을 맡아 제초작업·경조사·마을잔치 등 마을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른바 ‘전원 속 DIY 종합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것. 의식주와 관련한 다양한 DIY 프로그램과 교육장은 물론 작품전시실·텃밭·카페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황토집이 그 시작이다. 아직 골조만 세운 상황이지만 농막이나 소형주택 등 집짓기에 관심 있는 회원들과 함께 한달 전부터 공을 들이고 있다.
“귀농·귀촌인들이 시골에 정착하면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DIY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사람들이 원하는 걸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또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위한 소통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제 꿈이 조금 과한가요?” 꿈이 너무 크냐고 조심스레 물으면서도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는 고 대표. 황토집의 튼튼한 골조를 살펴보니 그의 꿈이 실현될 날이 그리 머지않은 것도 같다. DIY 목공학교 만드는 세상 cafe.daum.net/diyman ☎ 054-232-2545.
포항=김난 기자, 사진=김덕영 기자 kimnan@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