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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곡이규준(향토사학자) 묘소참배-10월28일 (일)
 석곡 이규준 선행은 자는 숙현(叔賢), 호는 석곡(石谷)으로 허준,이제마와 더불어 구한말의 한의학자이다. 경북 월성인으로 1855년 (철종6년) 경북 영일군 부산면(현 동해면) 임곡리에서 태어나서 위에 석동으로 옮겨 살아 석곡(石谷)이라 스스로 호를 삼았다. 1922년 향년 69세로 돌아가셨으며 현재 장기면 죽정리 화주산에 그 묘소가 있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문을 배워 익힐 여건이 어려웠음에도 유학 경전과 제자백과의 사상을 독학으로 설렵하시고 고향 석동에서 주역과 천문학 의학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통달하시어 후에 석곡서숙(石谷書塾)을 열어 전국에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선생의 학문과 사상은 “나의 마음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에 유(遊)하고 나의 행(行)은 공자(孔子)를 수(守) 하고자 한다”는 선생의 비문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선생은 육경(六經:역경, 서경, 시경, 춘추, 예기, 악기(주례)의 내용 중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지워 버렸다. 당시는 나라의 기강을 세운다는 명분 아래 주자학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목숨까지도 빼앗는 풍토 였으며 그기에 맹종하던 유림사회에서 경서의 한 부분을 필요하지 않는다고 지워 버리는 것은 아무나 행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 선생의 올곧은 학문의 정신과 용기를 능히 짐작 할 수 있다. 선생은 이 일로 당대의 사대주의와 권위주의에 물든 선비들로 비난과 조소를 받기도 하였으나, 이론적 학문으로 부당하다고 선생과 논쟁한 학자는 없었다. 선생의 뛰어난 학문과 사상은 오늘날 전국 한의사들의 학회로 이어오고 해마다 선생의 기일이 되면 선생 제자들 “소문학회”모임과 “포항시 동해면” 주관으로 선생의 고향 포항에서 매년 10월에 선생의 묘소에서 제를 올린다.석곡 선생 묘소 참배▶2012년 10월 28일 (일) 오전 10 : 00▶포항시 동해면 약전 삼거리 출발   석곡선생 저술한책*포상기문(浦上奇文)-양력의 법을 논한 1책*신교술세문(新敎術世文) 1책*황제소문절요(黃帝素問節要)*석곡산고(石谷散稿)-전국을 돌아보고 쓴 기행문 1책*구장요결(九章要訣)-수학을 논한 글 1책*석곡심서-당파의 시비를 논한 글 1책*의감중마(醫鑑重磨)-본초(本草)와 동의보감을 다시 연마한다는 뜻에서 쓴 천,지,인 3책*소문대요*본초-상하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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